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약속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예전부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금수만도 못한 행위로 치부했다. 어리석어도 약속은 지켜야 하며 불리해도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 도리였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약속에 대한 중함은 공통적이었다. 동양에서는 남아일언중천금이라는 말이 있다. 한마디의 말, 즉 언약이 천금보다 무겁다는 것이다.

두말은 이상하게도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을 때 하는 말이다. 동서고금의 진리는 아무리 자신에게 불리해도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양의 소설들을 살펴보면 약속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서양에도 이 못지않은 약속을 강조하는 말이 있다.
프로미스 이즈 프로미스 , 약속은 약속이다라는 말인데 어떤 경우든 어떤 이유든 간에 핑계가 댈 필요 없이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약속 한번 잘못해서 초상날 뻔 했는데 현명한 지인 덕에 벗어나는 이야기이다. 영화에도 이런 장면은 흔히 볼 수 있다.
주인공이 불리함을 무릅쓰면서 '약속은 약속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위험을 감수하는 장면 말이다. 동양에서도 약속은 서양보다 의미가 컸으면 컸지 결코 작지 않았다.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를 살펴보면 약속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우려는 글귀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석맹약이라는 말은 쇠와 돌같이 굳게 맹세하여 맺은 약속이란 뜻이다.
미생지신은 우직하게 목숨을 바쳐 약속을 지킨 사람을 빗댄 고사성어이다. 신의(信義)를 중요하게 여기던 노(魯)나라의 미생이 어느날 여자와 약속을 하고 만날 장소를 개울가 다리 교각 아래로 정했다.
약속 시간 보다 일찍 나간 미생은 손꼽아 여인을 기다렸는데, 때 마침 많은 비가 내려 개울물이 삽시간에 불어나게 됐다.
여인은 너무 많은 비가 내려 그곳에 나오지 않았지만, 미생은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불어나는 개울물을 바라보면서 다리 교각을 꼭 붙든 채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물이 빠진 뒤에 미생이 교각을 붙든 채로 죽어 죽어있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발견됐다.
미생지신이라는 말은 한때 정치권에서 큰 화두가 된 바 있다. 한 후보가 약속을 안 지키려하자 상대 후보가 약속을 지키라고 말하며 미생지신을 꺼내 들었다.
미생지신은 두 정치인간에 가치관을 드러내게 해준 바로미터가 되었다. 미생지신은 어리석음에 무게를 두느냐 아니면 우직함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미생지신을 냉소적으로 보는 이들은 물에 빠졌다는 것을 강조하며 때와 장소에 따라 사람은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빠져 죽을 정도로 신의와 약속을 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미화, 이런 우직함이 필요한 덕목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미생지신을 보는 관점이 가치관을 형성하고 세계관까지 나아가는 것을 보면 약속이 갖는 의미는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속은 개인 뿐 만이 아니라 국가간에도 큰 사안이다. 한 국가가 정상적인 국가가 되려면 많은 계약과 많은 약속들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약속을 지키려 한다. 일부러 안 지킬 약속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힘이 부쳐 약속을 못 지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약속과 항상 따라 다니는 것이 있다. 바로 그것은 정직이다. 약속을 못 지키는 경우 차선이며 차악이며 대안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약속을 못 지킨 죄를 사하는 방법은 정직밖에 없다.
약속은 일단 거짓이 된다. 지키지 못한 , 실천하지 못한 공수표이다. 약속을 못 지키는 경우는 힘에 부치는 경우이다. 돈을 못갚은 것도, 시간에 닿지 못하는 것도, 어떤 일을 해내지 못한 것도 모두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힘이 있고 돈이 있고 실력이 충분하다면 못 지킬리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주 만족할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며 만족할만한 재력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손으로 꼽을 정도 일뿐이다.
이런 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약속을 못 지키는 쪽이 약자일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반드시 약속을 안 지키는 자가 약자라는 논리는 위험하다.
하지만 약자들이 강자들과 약속을 할 때 약속이 같은 레벨의 사람과 할 때 보다 휠씬 위험하고 위중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국가간 거래나 계약 조약 등도 모두 이런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거창해보이고 대단해 보이지만 결국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국가 간의 약속은 할 수 있고 가능하고, 내 힘의 범위 내에서 해야만 한다.
여기서 교만을 부리고 괜히 센척하다가는 크게 당한다. 국가 간의 거래는 용의주도한 수사법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정중하지만 무척 잔인한 용어들이다.
이런 것들을 간과하고 뭔가를 하려 했다면 구상유취한 발상일 뿐이다. 내 힘을 과신하여 내 주제를 모르고 강자와 뭔가를 하려 한다면 이기기 어렵다.
가령 초등학생인 내가 대학생과 내기를 하는데 내 키를 성인처럼 늘여놓고 하는 것보다는 나의 작음과 힘없음을 자각하고 그에게 부담중량을 씌워 공정한 게임이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키만 크고 허우대가 멀쩡해보여도 백퍼센트 근육으로 이뤄진 체력을 감당하기에는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약속을 못 지킬수도 있다. 일이 여의치 않은 경우는 비일비재하고 자연이 허락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파기한 약속을 빨리 수습하는 길은 정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평창의 날이 밝았다. 남북(南北)한 그리고 한미(韓美)간 그리고 크고 작은 많은 약속들이 지켜져야 할 때다. 약속은 정직에서 출발함을 잊지말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