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표현 방법에 따라 다른 뜻이 되어 버리니 표현을 신중하게 하라'는 말이지요. 아주 사소한 부분의 차이로 인해 전혀 다른 양상으로 파악되는 경우가 많아, 듣는 사람의 판단과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 20일 기획재정부는 국무회의에서 복잡한 세법 조문을 알기 쉽게 새로 쓴 소득세법·법인세법 전부 개정안을 의결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복잡하고 길었던 문장은 짧은 문장으로 개선하였고, 중복된 용어는 통일하였습니다. 납세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은 쉬운 용어로 바꾸었구요. 세법의 각 조문이 납세자 입장으로 바뀌었으니, 세법 명칭도 납세자 입장에서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현재 국세기본법과 국세징수법은 명칭 자체가 과거 권위적인 징수기관 중심의 표현이었죠. 납세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을 권하는 것보다는 강제 규율·징취하는 법 명칭이었습니다.
국세기본법을 먼저 살펴볼까요. 제1조 ‘국세에 관한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사항과 납세자의 권리ㆍ의무 및 권리구제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세에 관한 법률관계를 명확하게 하고, 과세를 공정하게 하며, 국민의 납세의무의 원활한 이행에 이바지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국세의 기본사항 부분과 납세자 권리 부분이 양립하는 구조라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징수기관 관점에서 보면 국세의 기본사항이 강조되지만, 지금은 납세자의 권리 부분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세행정도 납세자권리헌장 제정 등 진정한 납세자보호가 성실납세로 이어진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세기본법 명칭도 ‘납세자보호법’ ‘납세자권리법’이나 ‘납세자권리보호법’으로 명칭을 바꾸어야겠죠. 국민의 납세의무와 권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국세행정의 기본임을 강조하여야 합니다.
한 예로 ‘귀하의 납세고지서를 국세기본법에 의하여 공시송달하였습니다’를 ‘귀하의 납세고지서를 납세자권리보호법에 의하여 공시송달하였습니다’라고 말이 바뀌면 고지서를 현실적으로 받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납세자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행정기관에서 노력한다는 의미로 보이는 것입니다.
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기한 연장의 경우에도 국세기본법보다는 '납세자보호법'에 의하여 연장한다는 것이 훨씬 국세행정이 부드럽고 친근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번엔 국세징수법을 살펴 볼까요. 제1조 ‘이 법은 국세의 징수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여 국세 수입을 확보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되면서 목적 자체가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징수행정의 면모가 드러나 있습니다.
내용을 보면 징수절차를 자세히 규정하고 있죠. 징수기관에서 보면 강행규정이지만 납세자의 입장에서는 세금을 내는 절차를 규정한 것인데요. ‘국세납세지원법’, ‘국세납부지원법’, ‘국세납부절차법’등 으로 바꾸면 순화된 법령의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예로 ‘국세징수법에 의하여 압류한다’ 보다는 ‘국세납세지원법에 의하여 압류한다’라고 하면 세금을 강제로 뺏기는 것보다 세금을 못 내서 지원절차에 따라 환가절차에 들어가는 의미로 순화되는 것입니다.
또한 ‘국세징수법에 의하여 출국금지한다’ 보다 ‘국세납부지원법에 의하여 출국금지한다’가 훨씬 조세 저항감이 줄어듦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조세감면규제법에서 강요하는 듯한 ‘규제’ 표현에서 조세특례제한법으로 자율적인 ‘제한’ 표현으로 바뀐 사례도 있으며 ‘근로장려금제도’의 경우 당초에 ‘근로소득지원금’에서 보듯,납세자 입장에서 도와주는 의미가 강조되도록 바꾼 경우도 있습니다.
이제 말 한마디도 국민의 관점에서 고민하고 생각할 때입니다. 세법 명칭도 새로운 인식전환 차원에서 바뀌어야 합니다.
<박영범의 알세달세>
ㆍ국세청 32년 근무, 국세청조사국,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 2, 3, 4국 16년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