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민 전 대한항공 광고담당 전무의 ‘갑질’ 사건이 연일 시끄럽다. 4년 전 ‘땅콩회항’으로 유명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이은 두 자매의 경악스러운 행동에 한진그룹 오너가의 민낯까지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사실 이같은 행동의 근저는 임직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한다. 쉽게 말하면 ‘너는 내가 돈을 주고 고용했고 너는 나 때문에 먹고 산다’는 배금주의로 무장한 천박함이다.
임직원들을 기업과 함께 가는 파트너이자 핵심 자산으로 보는 것이 아닌 소위 노예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들을 소중히 여겼다면 이러한 말과 행동은 결코 나올 수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기대하기 힘들지언정 적어도 돈을 함부로 번 장사꾼 자식들의 티는 적당히 내는 것이 좋았을 터다.
다른 기업들은 어떨까. 지난해 여기저기서 터진 산업계의 갑질 논란은 한 단면에 불과하다는 확신이다.
그동안 취재 과정에서 아쉬움을 금치 못할 때가 종종 있었다. 놀랍게도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다수 기업들은 오너 중심의 수직적인 시스템에 사로잡혀 있었다. 수평적 시스템에서 나오는 임직원들의 활기찬 에너지를 기대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이러한 기업들은 ‘나 때문에 회사가 이만큼 컸다’는 오너들의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자신의 생각에 오롯이 함몰됐고 건전한 비판을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참모진들 역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오너의 심리를 철저히 이용한다. 회사를 위한 헌신은커녕 오너의 비위를 맞추려는 무임승차행으로 치달아 결국 서서히 침몰하는 수순으로 파국을 맞는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한때 활활 타오르던 브랜드가 순식간에 확 꺼지거나, 수년 동안 실적 답보를 거듭하는 기업일수록 이러한 덫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SNS의 발달로 요즘은 기업들의 은밀한 속살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임직원들의 가감 없는 생각이 담긴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부터 직장인들이 직접 남긴 기업 리뷰를 확인할 수 있는 ‘잡 플래닛’ 등 이제는 해당 기업의 평판과 임직원들의 생각을 실시간 공유할 수 있다.
이번 대한항공 갑질 사건이 터지자 임직원들은 올 것이 왔다고 입을 모았다. 언젠가 한 번은 크게 터졌을 일이었다며 오너가의 횡포에 격한 분노를 토해낸다.
만약 대한항공 오너가가 임직원들의 생각을 한번이라도 훑어봤다면 지금과 같은 사면초가 상황을 면했을지 모를 일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한다. 인연으로 얽힌 것이 사람의 인생일진데 우리는 살면서 원수를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사람을 평생 볼 일이 없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큰 상처를 주다가 어느 순간 결정적인 순간에 비수로 돌아오는 사례들은 허다하다.
많은 기업들이 연이어 터지는 갑질 논란을 타산지석으로 삼길 바라는 마음이다. 기업의 수익 창출은 결국 임직원들의 힘에서 나온다.
기업 활동이 임직원들의 건전한 자아실현 수단으로 자리 잡을 때 수익 창출은 덤으로 따라온다. 이미 수많은 글로벌 성공 기업들이 이를 훌륭히 증명하고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