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암호화폐 ‘리브라’를 둘러싸고 미국을 비롯한 프랑스, 영국 등 서방 정치권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단순한 암호화폐가 아닌 각국 중앙은행과 화폐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인식입니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은 프랑수아 빌레이 드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가 내달 프랑스에서 열릴 G7에서 암호화폐 규제 연구 태스크포스(TF)의 출범을 알릴 것이라 밝혔습니다. 소비자 보호 정책을 적용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나 실질적으로 리브라에 대한 압박이 주된 목적으로 보입니다.
앞서 브루노 르메이어 프랑스 재무장관은 “페이스북이 추진하는 리브라는 기존 화폐와 같은 위치를 점할 수 없고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며 “G7 중앙은행 총재들은 다음달 재무장관 회담에서 페이스북 리브라 프로젝트 관련 보고서를 준비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마크 카니 총재도 “G7과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금융안정위원회(FSB) 등 다국적 국제기구와 함께 리브라에 대한 면밀한 검토에 나설 것”이라며 “최고 수준의 규제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경계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리브라 상용화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는 페이스북이 보유한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 23억2000만 명과 함께 지속적인 기술적 업그레이드가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암호화폐는 거래 처리 속도가 느려 상용화에 어느 정도 제약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리브라는 트랜잭션(TPS) 속도를 크게 높여 거래 처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서비스 초기엔 1초에 약 1000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지만 나중 1초 1만 건의 결제가 가능하도록 꾸준한 개선에 나섭니다.
또한 암호화폐 지갑 ‘캘리브라’를 페이스북이나 왓츠앱을 통해 간편하게 관리할 수 있고 송금과 결제 기능도 편이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현재 해외 송금의 경우 스위프트(SWIFT)라는 국제 전산망을 이용하고 있지만 여러 중개은행에 걸쳐져 있고 복잡한 절차와 송금 수수료 발생 등 불편함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리브라가 등장한다면 스위프트망의 몰락은 물론 스위프트를 통한 은행들의 수수료 이익도 없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맥신 워터스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CNBC에 출연해 “리브라가 달러와 경쟁하도록 허용하면 안 된다”며 “페이스북은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개인정보침해 조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이러한 검증되지 않은 확장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의 셰로드 브라운 의원은 “페이스북이 위험한 암호화폐를 아무런 감시 없이 운영하도록 두면 안 된다”며 “금융당국이 전면 조사에 나서야만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밥숟가락을 얹는 차원이 아닌 기존 생태계를 완전 허물어뜨리고 독식하겠다는데 이를 내버려둘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페이스북이 기존 질서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다소 성급한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시장이 로비로 움직일 수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향후 국면이 어떻게 진행될지 지켜봐야 한다”며 “페이스북이 우군을 얼마나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느냐가 리브라 성패에 분수령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체인파트너스는 23일 ‘리브라에 주목해야 할 7가지 메시지’란 보고서를 발표해 관심을 모았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리브라가 중국 텐센트의 위챗과 같이 필수 앱으로 자리 잡으려는 궁극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위챗은 현재 금융, 교통, 쇼핑, 게임 등의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중국인들의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특히 리브라가 금융기관을 파트너사로 둬야만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나중 골드만삭스, JP모건과 같은 글로벌 금융 파트너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작용할 것이란 판단입니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반발을 억누를 수 있으려면 힘을 가진 금융 권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견해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