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새벽 때를 함지에 머물게 하고 , 내일 아침 돋는 해를 부상지에다 맬 양이면 가련하신 우리 아버지 좀 더 모셔 보련마는 날이 가고 달이 가는 것을 뉘라서 막을소냐. 닭아 닭아 우지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이 글은 고전 심청전의 한 문장이다. 아버지를 두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기 전날 밤의 자신의 소회를 적은 글이다. 심청가는 판소리의 대가들도 꺼려할 정도로 어려운 소리라고 한다.
심청가는 잘못하면 동티가 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이다. 소리하는 사람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정도로 대가 센 소리라는 말도 있다. 이는 내용과 사연이 만만치 않아 생긴 소문일 수도 있다.
계속해서 심청전을 살펴보자. 심청이 아버지와 이별하기 전 마지막으로 아침 진지를 올리는 장면이다.
“심청이 들어와 눈물로 밥을 지어 아버지께 올리고, 상머리에 마주 앉아 아무쪼록 진지 많이잡수시게 하느라고 자반도 떼어 입에 넣어 드리고 김쌈도 싸서 수저에 놓으며 진지를 많이 잡수시오. 진짓상을 물려내고 담배 태워 드린 뒤에 , 그 진지상을 대하여 먹으려 하니 간장이 썩는 눈물은 눈에서 솟아난다”
떠나는 심청은 밤을 그냥 지새지 않았다. 더 슬픈 광경을 살펴보자.심청은 목숨을 버리기 위해 떠나기 전 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한숨으로 밤을 지새고 정성껏 아버지께 상을 바친다. 간장이 썩는 눈물이 눈에서 솟아날 정도로 슬픔이 형용하기 어렵다.

“이러다가 안 되겠다. 내가 살았을 때 아버지 의복 빨래나 해 두리라.하고 춘추 의복 상침 겹것, 하절 의복 한삼 고의 박아 지어 다려놓고 동절 의복 솜을 두어 보에 싸서 농에 넣고, 청목으로 갓끈 접어 갓에 달아 벽에 걸고, 아버지 버선이나 마지막으로 지으리라. 하고 바늘에 실을 꿰어 드니 가슴이 답답하고 두 눈이 침침, 정신이 아득하여 하염없는 울음이 가슴속에서 솟아난다. 아버지가 깰까 하여 크게 울지는 못하고 흐느끼며 얼굴도 대어 보고 손발도 만져보며…”
효녀는 자신이 죽으러 가기 하루 전에 자신이 없이 살아가야 할 아비를 걱정하며 옷을 지어주고 버선을 지어준다. 우리는 이글에서 효도의 극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효도란 이런 것이다라며 자녀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내용일 수도 있다. 이런 효녀만 둔다면 세상에 어느 것도 부럽지 않은 부모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떠나기 전날은 옷을 해 바치고 버선을 만들어주는 이런 효녀가 어디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살신성인이 이 모습이다. 심청이는 자신의 이별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로 규정한다. 심청이는 형제의 이별, 친구의 이별, 부부의 이별을 들으며 자신처럼 박복한 이별은 없다고 한탄한다.
심청이는 “돌아가신 어머니는 황천으로 가 계시고, 나는 이제 죽게 되면 수궁으로 갈 것이니, 수궁에서 황천가기 몇 만리 몇 천리나 되는고?”라며 수궁과 황천의 이별으로 자신의 죽음을 정의한다.
주목해야 될 것은 ‘이별’이다. 정말 걱정되는 ‘이별들’이다. 이별이 아무리 청순하고 가련해도 헤어짐은 비극이다.
어느 계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우리의 자녀들은 이런 심리적인 전철을 밟을 것이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떠나야 한다면 슬픈 일이다. 심청이의 경우는 미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사람이 아니고 가족전체가 뿔뿔이 흩어질수도 있고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이는 비극이다. 자식들이, 가족들이 심청이 같은 극한상황에 처해 기약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회자정리는 살아서 만나자는 뜻이다. 이 이별이 심청이처럼 황천과 이승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원통할 것이다. 회자정리나 거자필반은 생존해 있다는 믿음이 깔린 말이다.
심청이처럼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이별을 품고 산다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다. 심청전처럼 효도를 안 받아도 이별은 없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