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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 곰삭은 발효음식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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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 곰삭은 발효음식의 세계
  • 박은철 기자
  • 승인 2023.11.1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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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철 기자] 입동을 앞두고 들녘에서 마지막 갈무리를 하는 늦가을. 수확한 오곡백과를 삭히는 발효 작업도 활발해진다. 발효는 유기물이 미생물 작용에 의해 분해 및 변화하는 현상으로 넓게는 미생물에 의해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김치, 장류, 막걸리, 젓갈, 식초 등이 있다. 인류는 신석기 시대부터 식량과 음료를 생산하기 위해 발효를 이용해 왔고, 특히 우리는 발효음식의 민족이라 불릴 만큼 삭히는 기술이 발달해 있다. 삭히면 삭힐수록 맛과 향이 좋아지고, 건강에도 이로운 발효음식들. 깊어져 가는 가을, 곰삭은 발효음식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 희망은 치즈와 함께 – 전북 임실

한때 빨치산의 무대로 유명했던 임실. 대표 작물로 고추와 엉겅퀴도 있지만, 지금 임실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치즈일 것이다. 유가공 식품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임실 치즈가 이만큼 성공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1960년대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의 노력으로 산양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해 196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치즈 공장이 설립되었다. 이곳 임실에서 산양을 키우며 치즈를 만드는 박민호 씨는 13년 전, 전주에서 사업을 하다 파탄 나 실의에 빠져 있었던 아버지를 살려준 것이 딸이 사준 산양 두 마리였다. 

그렇게 산양을 키우며 위로를 받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현재는 80여 마리의 산양이 자유롭게 뛰놀고 있다는데. 산양은 자식 같은 존재라는 그는 건강에도 좋고 소화도 잘되는 감국을 먹이며 먹거리에도 신경을 쓰신단다. 아픈 역사를 이겨내고 산양이 뛰노는 낭만적인 한국의 알프스가 된 임실. 그곳에서 산양을 키우면서 희망을 찾은 박민호 씨 가족과 함께 치즈의 발효과정, 치즈와 우리 전통음식이 만난 새로운 맛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 달콤한 그 맛, 삭히니 더 맛있구나. - 경북 상주 거동마을

속리산 자락의 경상북도 상주. 늦가을 정취를 가득 담은 주황색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수확 철을 맞아 농장이 떠들썩하니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감의 낙하를 재촉하고 있다. 20여 년 전, 시골 출신이던 그녀는 도회지에 살면서도 늘 시골을 동경하다가 시어머니와 연고가 있는 이곳에 정착했다. 노년층이 주를 이루는 오래된 동네에서 40대의 그녀는 새댁 같은 존재. 배탈이 나도, 밭 매다 힘에 부쳐도 동네 어르신들은 그녀를 불렀고 그녀는 몸 사리지 않고 어르신들의 딸 역할을 했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어르신들을 작은어머니라 부르며 한 식구처럼 지내는 그녀는 감으로 식초도 담그고 메주도 쒀서 감 된장도 담그고 있다. 감 농장 하랴, 된장 만들랴, 음식 하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녀인데 그것이 가능한 것도 어르신들이 딸네 일이라 여기며 손을 보태주는 덕분이라는데. 콩과 홍시를 넣고 끓여 메주를 쑤고 담근 감 된장으로 구수하게 끓인 배추된장국과 직접 담근 새콤한 감식초를 드레싱 한 감식초도토리묵무침, 귀한 날에만 대접했다는 곶감과 건포도를 넣은 곶감떡까지. 다양한 음식들을 통해 감나무 익은 나무 밑에서 땀 흘린 사람들과 더불어 그 맛을 느껴본다.

■ 백년을 익힌 맛, 막걸리 – 충남 논산

충남 논산시 양촌면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오래된 양조장이 있다. 1921년부터 가내 수공업으로 막걸리를 빚던 이동중씨(72세)의 할아버지가 1931년에 직접 설계해 지은 건물로, 천정에는 건축 연도가 적혀있는 대들보가 있다. 이 대들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이동중씨의 자랑이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대부분의 양조장은 일본식을 모델로 한 까닭에 서까래와 대들보가 없는 데 반해, 이 양조장에는 우리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이 담겨있다. 할아버지만의 고집이었다고 전해진다. 

효모가 살아있는 생막걸리는 무려 100여 년 동안 주조해 온 이곳은 술 빚는 방식도 대를 이어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막걸리를 빚을 때는 보통 1차 발효를 하는 데 그치지만, 이 양조장에서는 2차 발효를 해서 덧술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럴 경우, 술이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두 배 더 필요하지만, 집안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단다. 70년대까지 주류시장의 80%를 장악했던 막걸리. 하지만 80년대 들어 소주와 맥주가 대중화되면서 막걸리의 위상이 무너지면서 많은 양조장이 문을 닫았다. 이동중 대표도 현실적인 한계를 느꼈지만, 가업을 자신의 대에서 끊을 수 없다는 책임감과 결코 막걸리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두고 버텼고, 이제는 논산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되었다. 

올해로 72세가 된 이동중 대표. 바람이 있다면 집안의 자부심인 이 양조장이 4대, 5대를 넘어 우리 전통주의 자랑이 되는 것. 지나간 추억에 딱 떠오르는 그 맛. 숙주나물, 고사리나물, 돼지고기를 넣은 녹두전과 녹두빈대떡은 막걸리와 긴 세월 함께 해온 곰삭은 관계이다. 막걸리에 있는 효모의 작용으로 부풀어 숙성시켜 만든 막걸리 술빵을 통해 할아버지, 아버지의 대를 이어 45년째 술을 빚고 있는 이동중씨네의 곰삭은 막걸리 밥상을 만나본다. 

■ 삭히지 못하는 건 없다. - 충남 태안 곰섬마을 

충남 태안의 수많은 갯벌 중 한 곰섬마을. 갯벌이라도 다 같은 모습은 아니다. 모래 갯벌이 있는가 하면 몸이 쑥쑥 빠지는 늪 같은 갯벌이 있고, 모래와 진흙이 적당히 섞여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단단한 갯벌도 있다. 갯벌의 성질에 따라 벌 속의 유기물도 다르고 잡히는 해산물도 다른데, 태안 곰섬마을에서는 이 세 가지 유형의 갯벌을 다 만날 수 있다. 그만큼 해산물의 종류도 다양한 이곳 곰섬마을에서는 이맘때면 바지락은 물론 개불, 바지락이 잡히고 갯벌에서 해삼도 딸 수 있다. 

갯가 사람들에게는 보물창고 같은 이 갯벌에서 소중한 양식들을 얻을 수 있다. 집에 젓갈류 3~4개 없는 집은 없다는 이 동네에서는 코숭어젓 등 각종 어류로 만든 젓갈뿐 아니라 개불, 해삼 내장으로도 젓을 담근다. ‘바다의 인삼’이라 불릴 만큼 몸에도 좋고 맛도 신선한 해삼 내장젓갈을 넣은 비빔밥, 솔향을 입혀 대나무에 꽂아 구운 개불구이와 개불로 담근 젓갈, 1년 내내 캘 수 있는 바지락을 소금에 절여 만든 바지락젓무침을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수육바지락쌈까지. 물때가 열리면 경운기와 오토바이를 타고 갯벌로 나가는 그들과 함께 각종 해산물 채취부터 젓갈 담그기와 젓갈을 활용한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러 떠나본다. 

배우 최불암이 진행하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은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4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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