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민규 기자] [★기사를 긁어가는 몰염치한 행위를 하지 맙시다★]
25일 오전 9시 30분 MBC에서는 특선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방영한다.
‘국제화 시대’였던 1990년대, 거리에 컴퓨터 학원과 영어학원이 넘쳐나던 때, 모 대기업에서 실제로 개설된 상고 출신 고졸 사원들을 위한 ‘토익반’과, 시기는 다르지만 실제 있었던 폐수 유출 사건이라는 두 축을 베이스 삼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야기는 출발했다.
주인공들이 8년째 승진 없는 말단 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삼진전자’는 ‘능력 중심’의 기치 하에 ‘토익 600점을 넘기면 고졸도 대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찬 약속과 함께 고졸 사원들을 대상으로 새벽 토익반 강좌를 연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강좌는 자영이 폐수 유출 사건을 목격한 후, 이들 고졸 말단들이 회사의 은폐 의혹을 파헤치는 싸움에 나서는데, 연대의 네트워크를 제공한다. 실화를 자구 그대로 또박또박 재현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실화 베이스라는 점, 내부 고발이라는 소재에서 연상되는 무거움과 비장함은 그러나 어디에도 없다.
극중 대사처럼 ‘tiny, tiny’한, 작고 작은 존재들인 그녀들의 싸움은 시종 유쾌하고 경쾌하게 그들이 할 법한 실수, 겪었을 만한 좌절, 회사라는 거대한 장벽 틈새를 뚫고 들어오는 작은 빛 같은 희망을 닻줄 삼아 나아가는 전진의 여정과 결말을 따라간다.
업무 능력은 대졸 대리보다 뛰어나지만 보조업무밖에 할 수 없는 현실, 하지만 이들이 없으면 회사가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활용한 이야기 구조는 자영과 유나, 보람이 마주하는 예측할 수 없는 순간순간을 따뜻한 공감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가건 ‘일’을 하는 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제 몫의 전투를 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 응원과 격려로 여겨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고졸 사원들이 파이팅 하는 이야기’가 기획의도라고 밝힌 제작자의 제안을 이종필 감독이 받아들인 것 또한, 위인전에는 당연히 나오지 않고 충분한 보상과 주목도 주어지지 않지만,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해 나가는 이들 고졸 말단 사원들이 보편적인 우리의 모습, 우리의 주어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눈물이 있는가 하면 웃음도 있지만 비장함과 자기 연민은 없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속 그녀들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밝고, 경쾌하고, 유쾌하게, 멋지게 관객들에게 보내준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당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던 대기업인 ‘삼진전자’를 배경으로 한다. 기업이라는 유기체를 꽉 메운 회장부터 말단 사원까지 영화는 빈틈없는 개성과 연기력의 배우들로 진용이 완성되었다.
극 중 ‘연희동’으로 통칭되는 회장은 박근형, 그의 아들이자 사장 자리는 당연히 제거라고 생각하는 질투의 화신인 상무 역에는 ‘어어부 밴드’와 어눌한 말투 속 심상치 않은 살벌함을 풍기는 연기 톤으로 알려진 백현진, 미국 MBA 출신으로 빌 게이츠를 연상시키는 신임 사장 역의 데이비드 맥기니스, 어떤 회사에나 있을 법한 꼰대와 유능함 사이, 조직 내 유리한 줄 서기에 여념 없는 생산관리3부 안부장 역의 김원해, 연기를 하는 듯 마는 듯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고문관 동수 대리 역의 조현철과 부장 아래서 실제로 실무를 총괄하는 듬직한 홍과장 역의 이성욱은 진짜인 듯 현실감 풍기는 연기로 자영 역 고아성과 함께 폐수 유출 사건의 핵에 해당하는 생산관리3부의 탄탄한 라인업을 완성했다.
조직의 자금 운용과 관리를 도맡은 회계부, 사무실 맨 구석 자리에서 빛의 속도로 영수증 처리를 끝내고 남아도는 시간에 테트리스로 소일하는 수학천재 보람에게 ‘세상이 요 만큼이다 정해 놓은 테두리에 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라’며 현재의 젊은 관객에게도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는 멘토 봉부장 역은 선배의 너른 품과 세상을 먼저 살아 본 이의 현명함을 동시에 풍기며 김종수가 열연했다. 창의성과 자유로움이 관건인 마케팅부는 고졸 말단 사원인 유나의 아이디어도 편견 없이 수용하는 쿨한 마케팅 반부장 역에 배해선이 캐스팅돼, 노련한 커리어 우먼과 열린 상사의 풍모를 그려냈다. 유나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아이디어를 훔쳐 가는 대졸 대리 조민정 역의 최수임은 관심과 견제라는 대기업 조직 문화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이 외에도 임신을 이유로 퇴사를 권고받는 총무부 미스 김 역 이봉련, 옥상에서 피는 담배 한 대의 여유와 시니컬함으로 세 친구의 수사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전략기획실 송소라 역의 이주영, 영어 강사로 깜짝 캐스팅돼 난생 처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 타일러 라쉬와 폐수 유출로 피해를 겪는 옥주마을 주민 부녀 역의 방준석과 심달기 등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장면 장면마다 빛나는 연기를 보여준 인상적인 앙상블을 찾아보는 재미를 약속한다.
★스타 인기투표. 국민 투표앱 '네티즌 어워즈'에서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