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캐릭터는 부부로 설정…"커플일 때 더 무서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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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뉴스] '몸집이 작아야 편리하고 효율적인 상륙거점 개척지…1m 60㎝를 겨우 넘는 내 키가 이곳에서는 평균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의 원작인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에서 주인공 미키의 외모 묘사가 나오는 대목이다.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선 키 185㎝의 미남 배우 로버트 패틴슨이 미키 역을 맡았다.
봉 감독은 제작사 플랜비엔터테인먼트로부터 소설을 받아 본 뒤 각색을 통해 원작의 캐릭터뿐만 아니라 설정, 스토리 등 상당 부분을 '봉테일'(봉준호와 디테일의 합성어)답게 바꿨다. 영화 '미키 17'과 원작의 차이를 소설, 봉 감독의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살펴봤다.
◇ 원작에서보다 10번 더 죽는 미키…"성장 이야기 담으려 해"
'미키 17'은 얼음 행성 개척에 투입돼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다가 죽으면 복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미키의 이야기를 그린다. 미키 뒤에 숫자 17이 붙은 이유는 영화에서 미키가 총 16번 죽음을 맞이하고 17번째로 태어난 미키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미키 17이 죽었다고 오해한 사람들이 18번째 미키를 생산하면서 이야기가 본격 전개된다.
원작에서는 이들을 대신해 미키 7과 미키 8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미키를 10번 더 죽게 한 셈이다.
봉 감독은 "'미키 17'은 미키가 자기 이름을 되찾는 여정을 따라가는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라며 "18이라는 숫자가 어른이 되는 나이인 18세를 의미해 설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단지 원작보다 많이 죽이려고 그랬다는 말도 있는데 진짜로 그런 거였다면 차라리 미키 87, 미키 124 정도로 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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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가 복제인간 프로젝트 '익스펜더블'(Expendable·소모품)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된 계기도 다르다.
비교적 근미래인 2054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선 미키가 친구 티모(스티븐 연 분)와 함께 차린 마카롱 가게가 실패해 막대한 빚을 지게 되면서 도망치듯 지구를 떠나기로 한다. 하필 마카롱 가게로 설정한 이유는 봉 감독이 좋아하는 디저트가 마카롱이어서다.
반면 보다 먼 미래가 배경인 소설 속 미키는 지구가 아닌 미드가르드라는 이름의 행성에 살다가 스포츠 도박으로 돈을 날린 인물이다. 하는 일은 역사 연구지만, 이 시대에선 역사를 경외시한다. 익스펜더블 인터뷰 진행자는 미키에게 "당신이 하는 일이 그러니까 역사가란 말이냐. 그것도 직업이냐"고 묻기도 한다.
티모는 소설 속의 베르토라는 캐릭터에서 따왔다. 소설에선 "미식축구 선수 출신 스타"처럼 묘사되지만, 영화에선 어리숙한 미키를 데리고 뒷골목을 누비는 허세 가득한 인물로 표현됐다. 봉 감독은 독일식 이름인 티모(Timo)가 속어로 쓰일 때 사기꾼이란 의미가 담겨 있어 이 이름을 그에게 붙였다.
◇ 행성 개척단의 사령관, 우스꽝스러운 독재자로 탈바꿈
악역 마셜(마크 러팔로) 역시 소설에서와 이름이 다르다. 소설에선 예르니모 마셜, 영화에선 케네스 마셜인데 '케네스'라는 이름이 왠지 정치인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라고 봉 감독은 밝혔다.
소설에서 사령관으로 불리는 마셜은 개척단의 책임자다. 복제인간은 진짜 생명이 아니라고 믿는 집단인 '나탈리스트' 일원으로, 냉정하고 권위적인 성격이다.
그러나 봉 감독은 '설국열차'(2013)의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턴)와 비슷하게 마셜을 우스꽝스럽고, 카리스마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독재자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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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선 원작에 없던 마셜의 아내 일파(토니 콜렛)를 창조해 부부가 같이 개척단원들 위에 군림한다는 설정도 눈에 띈다. 우유부단한 탓에 결정을 못 내리는 남편에게 귓속말로 조언하며 교묘히 그를 조종하는 알파의 모습은 어딘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봉 감독은 "독재자가 커플로 나올 때 더 무섭고 블랙코미디가 강해지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소설에서보다 비중이 커지고 중요해진 캐릭터도 있다. 니플하임의 토착 생명체 '크리퍼'다.
크리퍼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되지만, 크레바스에 빠져 얼어 죽을 뻔한 미키를 구해주고 뛰어난 지성까지 갖춘 동물이다. 새끼 크리퍼를 구하기 위해 수천 마리가 집단행동을 하는데, 미키를 아무렇지 않게 죽게 만드는 인간들과 대비된다.
봉 감독은 영화 후반부에서 인간에게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의 터전을 빼앗을 권리가 있는지를 크리퍼들을 통해 묻는다.
소설에서 크리퍼는 '눈 덮인 환경에 숨기 좋도록 진화했는지 새하얀 색'이고 '몸체는 여러 마디로 이루어져 마디마다 한 쌍씩 뻗은 다리 끝에는 딱딱하고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외양을 하고 있다. 애슈턴의 딸은 크리퍼를 지네처럼 그린 일러스트를 봉 감독에게 보여줬다.
그러나 봉 감독은 징그러운 이미지가 싫었다고 한다. 그가 크리퍼의 외모를 연구하며 영감을 받은 건 빵 크루아상이다. 크루아상을 유심히 보면 꼭 움직일 것 같았다고 그는 떠올렸다.
봉 감독은 '괴물'(2006), '옥자'(2017)에서 협업한 장희철 디자이너에게 크루아상을 건네며 "이게 크리퍼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동물 아르마딜로의 형상을 추가해 영화 속 크리퍼가 탄생했다. 어두운색의 털로 뒤덮여 있고 발이 여러 개 달렸지만,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해 귀여운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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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발신지=연합뉴스)
▮ CBC뉴스ㅣCBCNEWS 한종구 기자